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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중 별 생각 없이 동생 옆에 앉아 재본 혈압이 예상 밖으로 높게 나왔습니다. 두 번, 세 번 다시 재도 결과는 같았고, 그날 저는 처음으로 내과 문을 두드렸습니다. 성인 세 명 중 한 명이 고혈압인 시대라고는 하지만, 설마 내가 그 중 하나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아무 증상이 없었으니까요. 이 글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고혈압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들이 실제와 얼마나 다른지 직접 비교해 본 기록입니다.

가족력이 있으면 고혈압은 피할 수 없을까
흔히 부모님이 고혈압이면 자녀도 어쩔 수 없다고들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진료를 받아보니, 의사 선생님의 설명은 조금 달랐습니다.
가족력(家族歷), 즉 부모 중 한 분이 고혈압이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고혈압 발생 위험이 약 4배까지 높아진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이미 정립된 사실입니다. 두 분 모두 고혈압이라면 그 위험도는 더욱 올라가고요. 저도 알고 보니 부모님 양쪽 모두 혈압 문제가 있으셨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겁니다. 가족력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고혈압으로 발전하는 건 아닙니다.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일수록 체중 조절, 절주, 식습관 개선을 통해 발병 시점을 늦추거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결국 유전은 운명이 아니라 경고 신호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가족 중 고혈압 환자가 있다면, 특별한 증상이 없더라도 정기적으로 혈압을 확인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저처럼 휴가 때 우연히 재다가 뒤늦게 알게 되는 것보다는, 미리 알고 관리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24시간 혈압 측정, 왜 필요한 건지 몸으로 알았습니다
병원에서 처음 혈압을 재보고 높게 나왔을 때, 의사 선생님이 바로 약을 처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손가락에 끼우는 작은 기기를 건네주셨습니다. 저는 그걸 '절대 반지'라고 불렀는데, 정식으로는 활동혈압 측정기(ABPM, Ambulatory Blood Pressure Monitoring)라고 합니다. 여기서 ABPM이란 24시간 동안 팔 또는 손가락에 착용한 상태로 일정 간격마다 자동으로 혈압을 측정해 평균값과 패턴을 파악하는 장치를 말합니다. 병원 진료실에서 긴장 상태로 한 번 잰 혈압은 실제 상태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제가 직접 24시간을 끼고 생활해 보니, 이 검사가 왜 필요한지 실감했습니다. 주무시는 동안에도 착용해야 하고, 30분마다 자동으로 측정되다 보니 신경이 은근히 쓰이더군요. 불편하긴 했지만, 다음 날 병원에서 컴퓨터와 연동해 나온 결과는 꽤 정밀했습니다.
혈압은 아침에 높고 밤에는 10% 이상 낮아지는 것이 정상적인 패턴입니다. 또한 수축기 혈압(심장이 수축하며 혈액을 밀어낼 때의 압력)과 이완기 혈압(심장이 이완되어 혈액을 받아들일 때의 압력) 중 어느 하나만 기준을 초과해도 고혈압으로 분류됩니다. 수축기 140 이상, 이완기 90 이상이 기준입니다(출처: American Heart Association).
제 결과는 고혈압 전단계, 또는 초기 고혈압에 해당했습니다. 아무 증상이 없었기에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래도 조기에 잡은 게 다행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고혈압을 부르는 요인들, 비만·음주·스트레스
일반적으로 고혈압은 짜게 먹는 사람이 걸리는 병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나트륨 과다 섭취는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나트륨을 과잉 섭취하면 체내에서 그 농도를 희석하기 위해 수분을 끌어들이고, 혈액량이 늘면서 혈관 내 압력이 올라갑니다. 그게 지속되면 고혈압이 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저는 자극적인 음식을 즐기지 않는 편이고, 술도 크게 많이 마시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혈압이 높았습니다. 고혈압은 한 가지 요인이 아닌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주요 위험 요인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유전적 소인 및 가족력
- 비만 및 체중 증가 (체중이 늘수록 심장이 더 많은 일을 해야 함)
- 과다한 음주 (임상 연구에서 음주량과 혈압 상승은 비례 관계가 확인됨)
- 나트륨 과다 섭취
- 만성 스트레스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 상승을 유발)
- 노화 (특히 여성은 폐경 이후 에스트로젠 감소로 혈압이 급격히 오를 수 있음)
여기서 코르티솔(Cortisol)이란 부신에서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혈관을 수축하고 맥박을 빠르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일시적인 스트레스라면 혈압도 일시적으로 오르겠지만, 만성적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고혈압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출처: WHO 고혈압 팩트시트).
비만과 혈압의 관계도 생각보다 밀접합니다. 체중이 늘면 심장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혈관 근육이 두꺼워지며 수축과 이완 기능이 떨어지는 동맥경화(Arteriosclerosis)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동맥경화란 혈관 벽이 두꺼워지고 딱딱해지는 현상으로,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뇌졸중의 기반이 됩니다. 제 경우도 최근 몇 년 새 체중이 조금씩 늘었던 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혈압약은 평생 먹어야 하나, 직접 들어보니
처방을 받는 순간, 머릿속에 든 첫 번째 생각은 '이제 평생 약을 먹어야 하나'였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비슷하게 느끼실 겁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의 설명은 조금 달랐습니다. 혈압약은 경우에 따라 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혈압 전단계에서는 생활 습관 개선이 우선입니다. 고혈압 1기(수축기 140~159, 이완기 90~99)부터는 약물 복용이 권고되는데, 이는 단순히 혈압 수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심근경색(心筋梗塞), 뇌졸중, 신부전증 같은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심근경색이란 심장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혀 심장 근육 일부가 죽는 상태를 말하며, 고혈압이 장기간 지속되면 동맥경화를 통해 이 위험이 높아집니다.
혈압약의 종류도 여러 가지입니다. 이뇨제(利尿劑)는 콩팥에서 나트륨과 수분 배출을 촉진해 혈액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혈압을 낮춥니다.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ARB)는 혈관을 수축시키는 물질인 안지오텐신이 수용체에 결합하는 것을 막아 혈압을 낮추는 방식입니다. 최근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계열이기도 합니다.
저는 1년간 같은 약을 복용해 보자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솔직히 기분이 많이 다운됐습니다. 나름 운동도 하고 식단도 챙기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약 복용을 시작해야 한다는 현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르고 있다가 쓰러졌으면 어쩔 뻔했냐"는 동생의 한마디가 오히려 더 크게 마음에 닿았습니다. 일단 시작이 중요하고, 이후 생활 습관 개선과 병행해 약을 줄이거나 끊는 것은 의사와 상의하며 결정할 수 있는 일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증상이 없는데도 고혈압일 수 있나요?
A. 네, 그게 고혈압이 무서운 이유입니다. 저도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못했지만 혈압이 높게 나왔습니다. 고혈압은 대부분 뚜렷한 증상 없이 진행되며, 어느 순간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처럼 돌이킬 수 없는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기적인 측정이 유일한 조기 발견 방법입니다.
Q. 혈압약을 먹기 시작하면 정말 평생 먹어야 하나요?
A. 일반적으로 평생 복용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생활 습관 개선으로 혈압이 목표치에 도달하면 의사 판단 하에 약을 줄이거나 중단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혈압이 떨어졌다고 스스로 판단해서 임의로 끊는 것은 혈압이 급등할 위험이 있어 반드시 주치의와 상의해야 합니다.
Q. 24시간 혈압 측정은 꼭 해야 하나요, 집에서 재는 것과 다른가요?
A. 제가 직접 해보니 확실히 다릅니다. 집에서 한두 번 재는 것은 특정 시점의 혈압만 보여주지만, 24시간 활동혈압 측정(ABPM)은 수면 중 혈압 변화, 아침 혈압 급등 패턴 등 훨씬 풍부한 정보를 줍니다. 특히 진료실에서 긴장해서 혈압이 높게 나오는 '백의 고혈압' 여부를 판별하는 데도 유용합니다.
Q. 부모님이 고혈압인데 저도 반드시 걸리게 되나요?
A. 가족력이 있으면 고혈압 발생 위험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반드시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체중 관리, 절주, 싱겁게 먹기,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실천하면 발병을 늦추거나 혈압을 낮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가족력이 있다면 더더욱 정기적으로 혈압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론
이번 경험 전까지 저는 '증상이 없으면 건강하다'는 믿음으로 살아왔습니다. 고혈압은 그 믿음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몸으로 알게 해 준 계기였습니다. 나이가 들고 몸이 달라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되, 외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혈압은 하루에도 오르내리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가정에서 꾸준히 재는 습관이 무엇보다 실질적인 관리의 출발점입니다. 이미 가족 중에 고혈압 환자가 있다면, 지금 당장 혈압계 하나 구비해 두시길 권합니다. 시작이 늦은 게 아니라, 시작하는 그때가 가장 적절한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