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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도 대상포진 치료를 받고 겨우 돌아오는 길이라는 말에, 저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상포진은 '면역력이 떨어지면 걸리는 병'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직접 초췌해진 지인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이 병이 얼마나 삶 전체를 흔들어 놓는지 실감했습니다.

면역력이 무너지면 수두바이러스가 깨어납니다
수카르노 하타 공항 터미널 3에서 동생 가족을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분이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평소와 다르게 살이 쏙 빠지고 안색이 어두운 정여사 님이었습니다. 골프 모임에서 늘 호탕하게 웃으시던 분이 맞나 싶을 만큼 달라 보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한국에서 대상포진 치료를 받고 막 돌아오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 정여사님은 옆구리에 수포가 몇 개 생겼을 때 단순한 피부 트러블로 여기셨답니다. 피부 연고를 바르고 며칠을 그냥 보내셨다고 하셨는데, 그게 초기에 병을 키운 셈이 된 거죠. 얼마 지나지 않아 밤마다 수포 부위가 욱신욱신 쑤시기 시작했고, 몸살로 착각해 감기약을 드셨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결국 온몸이 쑤시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서야 대상포진임을 알게 되셨답니다.
대상포진의 원인은 수두 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입니다. 어린 시절 수두를 앓고 나면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신경 세포 안에 조용히 숨어 있습니다. 여기서 수두 바이러스란, 수두와 대상포진을 모두 일으키는 헤르페스 계열의 바이러스로, 한 번 몸에 들어오면 평생 잠복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나이가 들거나 스트레스, 과로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지는 순간 이 바이러스가 다시 활성화된다는 점입니다.
활성화된 바이러스는 신경을 타고 피부 표면으로 이동해 각질형성세포(Keratinocyte)를 감염시킵니다. 각질형성세포란 피부의 가장 바깥층을 구성하는 세포로,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세포끼리 서로 떨어지고 죽으면서 물집이 생깁니다. 통증이 먼저 오고 발진이 나중에 생기는 것이 대상포진의 특징인데, 바로 이 순서 때문에 초기에 단순 근육통이나 몸살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면역력의 핵심 지표로는 호중구(Neutrophil) 수치가 쓰입니다. 호중구란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직접 잡아먹는 백혈구의 일종으로, 정상 수치는 1,500개 이상입니다. 이 수치가 1,500개 아래로 떨어지면 세균성 감염에 급격히 취약해집니다. 실제로 항암 치료 중인 환자는 호중구 수치가 수백 개 수준으로 곤두박질치는 경우가 있어, 대상포진 발병 위험이 매우 높아집니다.
60대 이상에서 세 명 중 한 명이 대상포진을 경험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면역 세포인 T세포와 NK세포의 수와 기능이 모두 감소하는 이른바 면역 노화(Immunosenescence) 현상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면역 노화란 쉽게 말해 우리 몸의 방어 시스템이 서서히 낡아가는 과정으로,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정여사 님도, 저도 결국 이 흐름 안에 있다는 것을 공항에서 새삼 실감했습니다.
- 수두 바이러스는 어린 시절 수두 이후 신경 세포에 평생 잠복한다
- 면역력이 떨어지는 순간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되어 신경을 타고 피부로 이동한다
- 통증이 먼저, 발진이 나중에 나타나므로 초기에 다른 병으로 오해하기 쉽다
- 호중구 수치 1,500개 이하는 감염 취약 신호다
- 60대 이상에서 세 명 중 한 명이 걸릴 만큼 고령에서 발병률이 높다
수포가 사라져도 끝이 아닙니다 — 대상포진후신경통과 백신접종
정여사 님 이야기를 듣다가 제가 가장 놀랐던 부분이 있습니다. 수포는 이미 깨끗이 나았는데 그 자리가 계속 쑤시고 아파서 밤에 잠을 못 주무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낫고 있는 과정이겠거니 하셨는데, 불면증과 우울증까지 겹치면서 지난 6개월이 정말 고통스러우셨다고 하셨습니다. 저와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 분이 그렇게 무너지는 걸 보니 솔직히 좀 두려웠습니다.
이 상태가 바로 대상포진 후 신경통(Post-Herpetic Neuralgia, PHN)입니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란 수포와 피딱지가 모두 아문 뒤에도 신경 손상이 남아 통증이 3개월 이상 지속되는 만성 합병증입니다. 단순히 피부가 덜 나은 것이 아니라, 대상포진은 끝났지만 신경통이 따로 남은 상태를 말합니다. 40대에서는 대상포진 환자 중 약 10%, 60대 이상에서는 20% 이상이 이 신경통으로 이행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나이가 많을수록, 초기에 수포 범위가 넓을수록, 안면부에 발생했을수록 신경통으로 넘어갈 확률이 높아집니다.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도 발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만성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코르티솔(Cortisol) 호르몬 분비가 늘어납니다. 코르티솔이란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단기적으로는 몸이 위기에 대응하도록 돕지만 장기간 과다 분비되면 오히려 면역 세포의 활성을 억제해 전신 면역 기능을 떨어뜨립니다. 실제 연구에서 수면 부족이 면역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자가 면역 질환의 위험을 높인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정여사 님이 "항상 새벽 2시에 잠드는 생활을 수십 년 했다"라고 하신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가장 확실한 예방 수단은 백신 접종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접종 가능한 대상포진 백신은 재조합 백신 계열로, 2회 접종이 원칙입니다. 저도 처음엔 1차·2차 접종 비용이 꽤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공항에서 정여사님의 초췌한 얼굴을 본 순간,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6개월간 잠도 못 자고 우울증까지 겪는 것과 백신 비용을 비교하면 답은 분명합니다. 질병관리청도 50세 이상이라면 기저 질환 유무와 관계없이 대상포진 백신 접종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항바이러스제(Antiviral Agent) 투여는 수포가 생긴 뒤 72시간 이내가 가장 중요합니다. 항바이러스제란 바이러스의 복제를 직접 억제하는 약물로, 초기에 빠르게 투여할수록 신경통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정여사님처럼 초기에 피부 연고만 바르고 며칠을 보내다가 치료 타이밍을 놓치면, 수포는 낫더라도 신경 손상은 이미 진행된 뒤일 수 있습니다. 몸살과 다른 느낌의 통증이 특정 부위에 집중된다면 두피부터 발끝까지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대상포진은 젊은 사람도 걸리나요?
A. 네, 걸립니다. 60대 이상에서 발병률이 훨씬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극심한 스트레스, 과로, 수면 부족이 지속되면 20~30대도 예외가 아닙니다.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라면 연령과 관계없이 잠복 중이던 수두 바이러스가 깨어날 수 있습니다. 혹시 평소와 다른 편측성 통증이 생긴다면 한 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Q. 수포가 사라졌는데 왜 아직도 아픈 건가요?
A. 이 상태는 대상포진후신경통(PHN)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포가 없어진 것은 피부 병변이 회복된 것이고, 바이러스가 신경을 손상시킨 흔적은 별개로 남아 통증을 유발합니다. 수포 소실 후에도 3개월 이상 통증이 지속된다면 신경통으로 확진되므로, 반드시 전문의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Q. 대상포진 백신은 한 번만 맞으면 되나요?
A. 현재 주로 접종하는 재조합 백신은 2회 접종이 원칙입니다. 1차 접종 후 2~6개월 사이에 2차를 맞아야 충분한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비용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대상포진후신경통으로 이어질 경우 수개월에서 1년 이상 일상생활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비용 효율적인 선택 아닐까요?
Q. 대상포진 초기에 어떤 증상을 주의 깊게 봐야 하나요?
A. 몸의 한쪽 면에만 나타나는 날카로운 통증이나 타는 듯한 느낌이 먼저 생기고, 이후 같은 부위에 띠 모양으로 수포가 생기면 대상포진을 강하게 의심해야 합니다. 특히 통증이 일반 감기약이나 진통제로 잘 가라앉지 않는다면, 두피부터 발끝까지 피부를 꼼꼼히 확인하고 72시간 이내에 병원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결론
공항에서 만난 정여사님 덕분에 저는 대상포진을 완전히 다시 보게 됐습니다. 골프장에서 가장 크게 웃으시던 분이 앞으로 1년간 골프채를 못 잡겠다고 하실 때, 그 말이 얼마나 무겁게 들렸는지 모릅니다. 수포 하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 6개월의 고통과 불면, 우울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정말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가오는 휴가에 한국에서 대상포진 백신 1차 접종을 받을 계획입니다. 면역력을 지키는 것은 결국 잠을 충분히 자고,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필요한 백신을 제때 맞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여사 님이 하루빨리 쾌차하셔서 다시 활짝 웃으며 골프를 치시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참고: EBS 명의 — 대상포진, 건선, 아토피 피부염 / YTN 사이언스 — 대상포진 치료 후 계속되는 통증, 신경통 막으려면?